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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라 [생명나무] 카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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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4,811회 작성일 16-08-2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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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 1427, Vote: 12, Date: 2004/06/26 14:03:51 , IP: 211.219.117.241
글 제 목 [생명나무] 카발라
작 성 자 문성호




카발라 


생명나무(앞으로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생명나무라 함은 세피로트의 나무를 지칭한다)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카발라의 가르침 자체가 문자로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자격이 있는 소수의 선발된 자들 위주로 오랜 세월 비밀리에 구전(口傳)되어 왔기 때문이다. 카발라는 ‘전승’을 뜻한다. 

카발라는 대중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실 서양문명의 배후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서양의 종교와 철학, 예술과 문학의 이면을 깊이 파고들다보면 어김없이 카발라의 지하수맥을 발견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카발라는 유대교의 신비주의 전통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중세 이후 서양 전역에 걸쳐서 연구, 발전되어온 형이상학 체계이기 때문에 유대인만의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12세기에는 독일에서 초기 하시디즘 운동이 일어났으며, 13세기에는 스페인에서 사변적 카발리즘이 성행하였다. 다시 16세기에는 카발라 사상의 중심이 팔레스타인 사페드로 옮겨졌는데, 근대 카발라 사상의 모체가 되는 이삭 루리아가 활동한 것도 이 시기이다. 18세기에는 폴란드를 중심으로 루리아의 카발리즘을 바탕에 둔 하시디즘 운동이 일어났으며,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에는 카발라가 서양의 마법 체계에 일반화 되었다. 한편 14세기 이후 유럽 전역에서는 카발라가 차츰 기독교 교리에 적용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크리스찬 카발리즘이라는 한 분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어 19세기말에는 블라바츠키 여사의 신지학회(Theosophy)와 맥그리거 매터즈의 황금새벽회(Golden Dawn)를 통해 카발라가 소개되기에 이르렀으며, 특히 맥그리거 매터즈의 교단을 통해 카발라의 체계가 서양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때문에 현재 카발라는 그 전해진 배경과 서로 상이한 체계에 따라 유대 카발라, 크리스천 카발라, 헤르메스 카발라(황금새벽회의 카발라 체계)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카발라가 문자로 처음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2세기경 랍비 시메온 벤 요하이에 이르러서였다. 요하이의 논문들은 후에 카발라의 성전(聖典)인 『조하르』의 원형이 되었으며, 『조하르』의 일부는 다시 크리스챤 폰 로젠로스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어 『카발라 데누다타』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고 이는 다시 맥그리거 매터즈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어 『베일 벗은 카발라(Kabbalah Unveiled)』로 출판되었다. 

『조하르』와 함께 카발라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받는 것이 『세펠 예트지라』이다. 『조하르』가 주로 신성의 본질과 존엄성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우주의 현현과 세피로트의 교의를 다루고 있다면, 비록 분량은 적지만 6장 전체가 10개의 세피로트와 22개 히브리 알파벳의 확립에 대해 다루고 있는 『세펠 예트지라』는 카발라 사상의 핵심적이고도 아주 중요한 기초가 되는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히브리 알파벳은 바로 생명나무 22개의 길에 해당한다. 

『세펠 예트지라』는 우주창조론과 우주철학을 다루는 비교(秘敎)전통인 마쉐 베레쉬트로부터 유래하였다고 한다. 마쉐 베레쉬트는 마쉐 멜카바와 함께 카발라의 두 원류가 되는 신비학파로 바빌로니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마쉐 베레쉬트가 주로 창조의 역사에 관심이 있었던 반면, 마쉐 멜카바는 멜카바 보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에 목표를 두었다. 마쉐 베레쉬트는 사변적 카발라로 그 전통이 이어졌으며, 마쉐 멜카바는 실천적 카발라에 그 원형이 남아있다. 

비록 카발라의 전통이 이 멜카바 신비주의 시대(기원전 1세기~기원후 13세기)와 중세를 통하여 형성되고 그것이 현대에까지 이르렀지만, 이는 기록으로 남아있는 역사일 뿐이고 실제로는 훨씬 오래된 기원을 갖고 있다. 일례로 『세펠 예트지라』의 마지막 장에서는 『세펠 예트지라』에 담겨진 교의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계시된 내용이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시조 아브라함이 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적어서 새겨 넣자, 하느님(the Lord)은 가장 높게 그 자신을 드러내었으며, 아브라함을 그의 사랑하는 자로 부르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과 계약을 맺었다.” (『세필 예트지라』 p.22~23) 

다만 랍비들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결코 자신이 받은 계시를 기록하지 않았으며, 대신 그것을 그의 아들들에게 구두로 전했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본래 칼데아 우르 사람으로, 그와 그의 자손들이 이집트로 이주함으로써 카발라의 가르침이 이집트에 전해졌다. 이후 모세가 이집트에서 카발라의 비전(秘傳)에 입문했고, 40년 동안의 방랑을 거쳐 카발라에 통달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히브리인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는 다시 70명의 장로들을 카발라에 입문시켰고, 그 이후에는 이스라엘에서 전승이 이어지게 되었다. 

아브라함 또한 카발라의 최초 창시자는 아니었으니, 맥그리거 매터즈에 의하면 처음에 신이 에덴동산(Paradise)의 신지학파를 형성하고 있던 선택된 천사들에게 직접 카발라를 가르쳤으며, 이 천사들이 신성실락 이후 아담으로 하여금 신성 상태를 회복할 수 있도록 카발라를 가르쳤다고 한다. 또는 제프 벤 시몬 할레비에 따르면 아브라함에게 카발라의 가르침을 전해준 것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이었다고 하는데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더욱이 멜기세덱은 베일에 가려져 있어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 흥미 있는 것은, 수년 전 우리나라에서 카발라를 공부하는 조하선 씨가 그의 책 『베일 벗은 천부경』에서 한민족의 고대 경전인 『천부경』이 카발라의 가르침과 동일하다는 것에 착안을 하고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가르침을 받기 전 수메르를 통해 전해진 카발라의 기초지식을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현재 매우 심하게 왜곡되어 있으며, 이를 바로 잡는 과정에서 재야 사학계(史學界)에서는 수메르 문명이 고대 한민족 역사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주장이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다. 『천부경』도 그 시기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기원이 오래된 것이고, 따라서 아브라함이 수메르를 통해 고대 한민족의 사상을 접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대 한민족의 역사와 유산은 처참할 정도로 망실(亡失)되어 만약 카발라의 사상이 본래 우리 것이었다고 해도 지금은 하나의 완벽한 체계로 복원해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어쨌든, 논란이 많은 선사시대 저편 어딘가에서 그 원류를 찾아야 할 정도로 오래되고 신비한 기원을 가진 것이 카발라의 사상이요 카발라의 우주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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