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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학 (블라바츠키, 포웰)

멘탈체 [멘탈체] 6.카마-마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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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3,474회 작성일 16-07-29 00:30

본문

제 6 장 

카마-마나스(욕망-마음) 




The Astral Body(pp23-25)에서 우리는 카마 즉 욕망을 검토했었고 또한 카마-마나스Kama-manas 즉 욕망과 마음의 뒤엉킴을 다루었다. 이 책에서는 The Astral Body(pp26-29)에서 카마에 관하여 언급된 부분중 많은 부분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주제의 마나스 측면에 주로 내용을 국한시키면서 우리는 다시 카마 마나스를 다루어야 한다. 

The Astral Body에서 말해진 것을 간략히 요약하면 카마는 아스트럴체에 현현해있는 생명이다. 그것의 특유의 속성은 감정의 속성이다. 그것은 동물적 욕구, 욕정들과 욕망들을 구성하고 있다. 우리를 세상에 묶는데 힘을 행사하는 것은 바로 우리속에 있는 그 원숭이와 호랑이이다. 카마 즉 욕망은 또한 아트마 즉 의지가 저차원적으로 반영된 측면이다. 

카마는 때때로 너무 제한된 의미 즉 단지 상스러운 관능적인 욕망을 의미하는데 사용된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욕망을 의미한다. 욕망이란 사람의 외향적 측면 즉 세가지 세계에 속해있는 대상들에 대한 사랑이다. 그리고 엄격한 의미에서의 사랑은 생명의 사랑 즉 신성의 사랑이며 고급자아, 내향적자아이다. 

리그베다Rig veda에서 카마는 창조를 일으키고 추진하는 그러한 감정을 의인화한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활발한 감각력이 있는 존재, 생생한 감각, 열정적인 삶의 격정적인 격동을 갈망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우주와 마찬가지로 개인에 대해서도 카마는 재화신의 주요한 원인이고 대욕망과 소욕망들로 분화되는 것처럼 이것들이 사고자를 지상으로 사슬로 연결하여 하향하게 하고 그를 계속하여 다시 재출생하게 한다. 

동양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화신하게 하는 이러한 갈구 또는 욕구를 팔리탄하Pali Tanhâ에서는 트리쉬나Trishnâ로 알려져 있고 트리쉬나의 실현 또는 완성은 우파다나Upâdâna라 알려져 있다. 

마나스는 생각하다 라는 동사어원을 가진 “만man”에서 왔다. 그것은 서구에서 마음이라고 모호하게 언급되는 것으로 우리 속에 있는 사고자이다. 마나스는 불멸의 개체성, 실제의 “나”이다. 

그러나 사고자인 마나스 자신은 상위 멘탈계의 원인계에 살고 있는 영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하위세계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자신으로 부터 하위마나스를 투사한다. 그 마나스는 반영, 그림자, 광선 등 다양하게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두뇌의 배치와 여러가지 신체적 특성들을 통하여 두뇌가 변형할 수 있는 그러한 멘탈적인 힘들을 두뇌를 통하여 나타나게 하면서 두뇌에 그리고 그 속에서 작용하는 것은 바로 이 광선이다. 이 광선이 뇌신경세포들 속에 있는 분자들을 진동시키고 그리하여 물질계에 의식을 일으킨다. 이 하위마나스는 다음에 나오는 것들로 이루어진 4가지 영역 속에 흡수되어 있다. 

카마 또는 욕망 
프라나 또는 생명력 
에텔체 
신체 

그것은 한손으로 카마를 움켜쥐고 반면에 다른 한 손으로 그 아버지인 상위 마나스와 손을 잡고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지상의 생애중, 카마와 하위마나스는 함께 결합되어 있으며 종종 카마-마나스라고 불려진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카마는 동물적이고 정욕적인 요소들을 제공하고 하위마나스는 이들을 합리적으로 다루는 것으로 지적인 능력들을 부가한다. 그 둘을 함께한 것 카마-마나스는 생애동안 아주 밀접히 혼합되어 있어서 그들은 거의 개별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욕망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마-마나스는 하나의 새로운 본질이 아니라 마나스의 하위부분과 카마를 혼합한 것이다. 카마-마나스 즉 욕망을 가진 마나스는 외부의 대상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마나스로서 잘 묘사되어 있다. 

인간속에 있는 하위마나스의 제 작용은 멘탈능력, 지성적인 힘, 예민함, 정밀함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낸다. 그들은 비교, 사유, 판단, 상상과 아울러 다른 멘탈 능력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종종 천재적 재능이라 불리는 것에까지 이르지만 블라바츠키 여사는 교양과 아울러 순전히 지성적인 예리함의 결과로 이루어진 “인위적 천재적 재능”이라 부른다. 

우리가 보통 마음이나 지성으로 부르는 것은 블라바츠키 여사의 말에 의하면 “마나스 자체가 희미해지고 아주 자주 왜곡되어진 것들이 반영된 것이다.” 그것의 참된 성질은 종종 열정과 허영과 오만함과 같은 것 속에 있는 카마적 요소들의 존재에 의하여 증명된다. 참된 천재적 재능은 하위의식속으로 침투하는 상위 마나스의 섬광들로 구성되어 있다. 빈도파니샤트Bindopanishat에서 말해지는 바와 같이 “마나스는 참으로 이중적인 것 즉 순수와 불순을 가진 것으로 선언된다. 불순한 것은 욕망에 의해 결정되고 순수한 것은 욕망에서 벗어난다.” 

논증하려는 대신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천재적 재능은 이리하여 상위의 마나스 즉 에고에 속한다. 참된 직관直觀은 그 능력들 중 하나이다. 관찰에 의하여 얻어진 사실들을 정렬하여 비중을 정하고 비교 평가하는 절차인 사유思惟는 하나의 사실을 다른 사실과 비교하고 그것들로부터 논의하고 그들로부터 결론들을 도출한다. 이것은 두뇌기관을 통한 하위마나스의 작용이다. 그 도구는 추론이다. 귀납법에 의하여 가설을 설정하면서 기지The known로부터 미지The unknown로 올라간다. 연역법에 의하여 그것은 새로운 방식으로 그 가설을 입증하면서 다시 기지로 내려온다. 

또한 일반적인 사유와 “천재적 재능”으로 알려진 의식의 특수한 번쩍임들 사이에 존재하는 메카니즘에 있어서 차이가 존재한다. 사유는 단계적으로 아스트럴 및 멘탈계의 연속적인 하위계들을 통하여 점차로 두뇌로 내려온다. 그러나 천재적 재능은 단지 원자적Atomic 하위계들을 통해서만 즉 원자적 멘탈로부터 원자적 아스트럴 및 원자적 물질하위계 속으로 쏟아부어지는 의식에 의해서 생긴다. 

신체두뇌의 능력인 이성理性은 전적으로 감각들의 증거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인간내부에 있는 신성한 영혼divine spirit에 직접 관여하는 성질은 될 수 없다. 신성한 영혼은 토의와 논쟁을 암시하는 모든 사유들이 자기에게 쓸모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혼 또는 에고는 양심을 통하여 또한 말하는데 양심은 옳고 그른것 사이의 즉각적인 지각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예언prophecy과 영감에 의한 예언vaticination 그리고 소위 신성한 영감은 단순히 인간 자신의 불멸의 영혼spirit에 의해서 위로부터 주어진 광명화(깨달음)의 결과들이다.(이러한 주제의 측면은 제31장에서 검토될 것이다) 

카마-마나스는 인간의 개인적 자아인데《베일 벗은 이시스Isis Unveiled》에서는 “아스트럴 영혼The Astral Soul”이라 불린다. 개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나”라고 인식하게 하는 것은 바로, 다른 것과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접촉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하위마나스이다. 하위마나스는 우리를 지성적으로 되게하고 스스로를 모든 다른 자아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하위마나스는 느껴지고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 현혹되어 그것이 감지할 수 있는 것중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인 통일성을 깨닫지 못한다. 하위마나스는 카마적 감정들과 정욕들과 욕망들의 쇄도에 동요되고 모든 물질적인 것들에 매료되어 자신이 뛰어든 폭풍들의 목소리에 의해 눈이 멀고 귀가 멀어서 자기 출생지의 순수하고 고요한 영광을 잊고서 황홀함을 주지만 평화를 주지 않는 혼란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진다. 감각들과 동물적 성질의 최후에 약간의 기쁨을 주는 것은 하위마나스이다. 왜냐하면 기억이나 기대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열정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미묘한 상상의 힘없이는 그리고 꿈과 공상의 섬세한 색깔들이 없이는 어떠한 절정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카마는 하위마나스를 재빨리 지상에 묶는다. 사랑, 인정, 능력 그리고 명성을 얻을 목적으로 어떠한 행위가 시작되는 한 그 야심이 아무리 웅장하고 자비가 아무리 광범위하고, 성취가 아무리 고상할지라도 마나스는 카마로 더럽혀져 있으며 그 원천만큼 순수하지는 않다. 카마와 마나스는 각각이 서로서로를 자극하고 일깨우면서 서로서로에 작용하고 반작용한다. 마음은 항상 욕망에 의해 재촉을 받고 항상 쾌락의 대사로서 하는 수 없이 섬김을 받게 된다. 쾌락을 주는 것은 마음에 의해 언제까지나 추구되고 마음은 쾌락을 주는 영상을 생기게하고 고통을 주는 영상들을 배제하려고 항상 애쓴다. 멘탈 능력들은 동물적 정욕들에 그들이 순전히 동물적 특성들로서 작용할 때 그들속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힘과 특징을 증대시킨다. 왜냐하면 멘탈체에서 받은 인상들은 아스트럴체에서 받은 인상보다 더 영속적이며 멘탈체는 기억과 상상의 매개를 통하여 그들을 항상 재현한다. 이리하여 멘탈체는 동물들 속에서는 신체적 자극들에 의하여 각성될때까지 잠자고 있는 욕망들을 아스트럴체에게 일깨우면서 아스트럴체를 자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으로) 개발되지 않은 사람속에 하등 동물들에서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 감각을 통한 기쁨, 관능적 욕망, 잔인함, 하등 동물들과 거리가 먼 계산성 등을 발견한다. 

이리하여 감각들을 느끼는 데 예속되어 마음의 능력들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떠한 동물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야만적인 짐승으로 만든다. 

욕망 엘리멘탈 즉 아스트럴체적인 본능적 삶이 이 마나스와 카마의 뒤엉킴에서 하는 역할은 The Astral Body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했었다. 여러분들은 그 내용을 참조해야만 한다. 인간의 아스트럴 및 멘탈체는 아주 밀접히 뒤섞여서 그들이 하나의 체로서 작용하는 것으로 종종 말해진다. 사실, 베단타Vedântin 철학의 분류체계에서 그 둘은 하나의 코샤Kosha 즉 껍질로 분류된다. 

붓디체Buddhic Body 아난다마야코샤 

원인체Causal Body 비그나나마야코샤 

멘탈체Mental Body 마노마야코샤 
아스트럴체Astral Body 

에텔체Etheric Double 안나마야코샤 
육체Dense Body 

학도는 감각의 중추들이 카마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문다코파니샤트Mundakopanishat에서 “모든 피조물의 사고思考의 기관은 감각들에 의하여 고루 퍼져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고의 기관으로서 또한 “감각들에 의해 고루 퍼져있는” 것으로서의 마노마야코샤의 이중작용을 강조한다. 

우리는 여기서 카마-마나스와 원자들Atoms의 스파릴래Spirillæ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을 주목해보자. 지구사슬의 첫번째 기간중에 물질계 원자의 첫 일단의 스파릴래가 모나드Monad의 생명에 의하여 활성화되었다. 이 일단은 조밀한 신체에 영향을 미치는 프라나의 흐름에 의하여 사용된다. 

두번째 기간 중에는 두번째 일단의 스파릴래가 에텔체와 연결된 프라나가 그들을 통하여 흘러듦으로써 활성화된다. 

세번째 기간중에 세번째 일단의 스파릴래가 아스트럴체와 연결된 프라나가 그들을 통하여 흘러들어 이리하여 감각작용이 가능하게 함으로써 활성화된다. 

네번째 기간중에 네번째 일단의 스파릴래가 카마 마나스적인 프라나가 그들을 통해 흘러들어 그들로 하여금 사고매체로서 작용할 뇌에 사용되는데 적합하게 함으로써 활발하게 된다. 

구도의 길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우에 따라서 보다 높은 의식의 사용을 위한 더 깊은 여러 일단들의 스파릴래의 활성화가 필요한데 이것은 어떤 요가수련들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진화의 일반적인 과정에서 새로운 일단의 스파릴래는 각 기간중에서 개발될 것이고 일곱번째 기간에서는 일곱 스파릴래 전부가 활성화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기간에 살게될 사람들은 내적인 것들에 반응하고 고차원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오늘날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쉽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각각의 화신중 마나스는 다음의 세가지 일 중 하나를 할지도 모른다. 

(1) 마나스는 자기의 근원을 향하여 솟아오르기 위해서 끈질기게 분투하고 노력해서 하늘에 있는 아버지 즉 상위의 마나스와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2) 마나스는 부분적으로 높이 오르고 부분적으로 하향할지도 모르는데 이것은 일반인에게 주로 있는 경우이다. 

(3) 마나스가 카마 요소들로 막혀서 그것들과 하나가되어 억지로 부모로부터 떼어져 나와서 소멸될지도 모른다. 하위마나스가 당분간일지라도 카마로 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킬 수 있을때마다 그것은 최고의 멘탈능력들의 안내자가 되고 물질계인간에서 자유의지의 대행자가 될 수 있다. 이 자유의 상태란 카마가 억제되고 정복되는 것을 말한다. 

자유의지는 마나스 자체 속에 존재한다. 마나스로부터 자유를 느끼는 것,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지혜와 저급의 속성이 아무리 반항하고 투쟁할지라고 고급속성이 저급속성을 지배할 수 있다는 지혜가 온다. 의식이 자기자신을 카마 대신에 마나스와 동일시하자마자 하급속성은 고급의식에 걸터 앉을 수 있는 짐승이 되어 버린다. 즉 더 이상 “나”가 아니다. 이리하여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과 약한 의지를 가진 사람의 차이는 약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외부로부터 외부의 매력과 반감 즉 욕망에 의하여 움직여지는데 “의지가 왕권을 잃은것”을 뜻하는 반면에 의지가 강한 사람은 자기의 축적된 경험들의 누적된 힘에 의해 인도되며 외부환경에 적절한 힘을 집중함으로써 외부 환경들을 계속적으로 정복하면서 내부로부터 주어지는 순수한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 더우기 하위마나스가 카마로 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할때 그것은 상위 마나스로 부터 받은 자극을 하위 의식에 더욱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되고 그 다음에 우리가 보아온 바와 같이 자아로 부터 온 빛이 하위마나스를 통하여 뇌속으로 흘러들면서, 천재적 재능이 번뜩여 나온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해도 좋다. 즉 우리가 개성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한, 욕망과 욕구의 폭풍이 우리 주위로 몰아치는 한 그리고 우리가 감정의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한, 그만큼 오랫동안 상위 마나스 즉 자아의 목소리는 우리의 귀에 이를 수 없다. 자아의 지시는 불과 회오리 바람속에서 오지않고 천둥소리나 폭풍속에서도 오지 않고 단지 침묵의 고요함이 느껴지고 자리잡을때만 내려오는 것으로 바로 그 분위기가 동요없이 계속 고요함이 깊어질 때만 그리고 사람이 자기의 귀를 (교묘하게 속이는) 세상적인 침묵까지도 막는 망토로 자신을 감쌀때만 (바로 그때 일때만) 침묵보다 더 고요한 목소리, 그의 참된 고급자아 즉 에고의 목소리가 들린다. 파문이 인 호수가 달과 별을 비추지만 지나가는 미풍에 파문이 일때 단지 흐트러진 반영만을 나타내듯이 사람도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의 욕망을 고요하게 하고 고요함을 그의 여러 활동의 우위에 둘때 자신내에 고급자아의 영상을 재현할 수 있다. 제자는 자신의 (직계) 스승의 마음을 비추기까지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자신의 상념이 솟아나오고 자신의 욕망이 일어나면 그는 아무 의미도 없는 흐트러진 반영인 춤추는 빛들만을 가진다. 

한 스승의 말에 의하면 “파문이 없는 마음의 고요하고 잔잔한 표면에서만 비가시적인 것들로부터 모아진 비전들이 바로 가시적인 세계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우리가 지상적인 삶속을 헤쳐나갈때 매일 일어나는 모든 역경의 영향들로 부터 마음계를 보호할 수 있게하는 것은 바로 방심하지 않는 주의(깨어있음)를 통해서이다.” 

우주심의 일부로서 자아는 자기자신이 속하는 (영적인) 세계에서는 무조건적으로 전지全知하지만 하위세계에서는 그 자아가 개인적 자아를 매개로 하여 작용해야 하므로 단지 잠재적으로 그러하다. 원인체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지혜의 수용체이다. 원인체가 인간의 감각들을 벗어난 것을 우연히 보게되어 그 본 것들을 어떤 뇌세포에 보내어 사람을 보는자, 점장이 그리고 예언자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원천으로 부터이다. 

이 승리는 모든 의식을 이 목적을 향하여 기울인 연속된 많은 화신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으며 생명이 생명을 계승하듯이 신체도 마나스의 자극진동에 더욱더 미묘하게 일치하여 하위마나스는 점진적으로 자기 수용체로서 보다 조잡한 아스트럴 물질을 점점 덜 필요로하게 된다. 하위마나스를 물질과 아주 밀접히 접촉하게 하여 그 신성한 본질을 완전히 가리고 완전히 그 직관을 망쳐놓는 “맹목적인 현혹적인 요소”들을 점차로 제거하는 것이 마나스 “광선” 다시 말해 하위마나스의 사명의 일부분이다. 마침내, 카마의 정복이 이루어지고 몸이 마나스에 반응하게 될 때, 하위마나스는 그 근원인 상위 마나스와 하나가 된다. 기독교적 용어로 표현하면 이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항상 하나가 되어 왔듯이 모든 계에서 이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발적인 경우일지는 모르지만 화신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아데프트Adept의 단계로서 매우 향상된 단계이다. 그러므로 문다코파니샤트에 있는 그 위대한 말씀을 옮기면, “사고 기관은 감각들에 의해 널리 퍼져있으며 그 기관이 정화될 때 아트마가 스스로를 현현시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위마나스는 부분적으로 상승하고 부분적으로 하강한다. 일반인의 삶에 대한 정상적 경험은 마나스가 계속적으로 카마와 씨름하는 전장이다. 때로는 (영적) 열망이 승리하여 감각의 사슬들이 끊어지고 하위마나스가 위쪽으로 치솟는다. 다른때엔 카마가 승리하여 하위마나스를 지상에 묶는다. 

이리하여 제 4 장에서 간략히 본바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의식의 센터가 카마-마나스에 묻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더욱 개발된 사람들은 이성이 욕망을 통제하기 시작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의식의 센터가 상위 아스트럴에서 하위 멘탈로 스스로를 점차로 (상승)이전하고 있다. 사람이 진화함에 따라 의식의 센터는 사람이 흥미와 욕망에 의해서 하기 보다는 본질에 의하여 지배되면서 훨씬 더 높이 상승한다. 

왜냐하면 결국엔 인간의 지성은 자신의 삶 및 물질적 환경이 당연히 명료하게 이해되기를 요구한다. 그의 마음은 (모든 만물속에서) 질서, 합리성, 논리적인 설명을 요구한다. 그의 마음이 혼란속에 살면서 고통이 없을 수는 없다. 그 자체가 평화롭게 존재하고자 한다면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하위마나스가 카마와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어서 상위 마나스와 하위마나스를 묶는 가느다란 연결이 즉 하위마나스를 스승과 묶는 은실이 뚝뚝 끊어져서 둘로 분리된다. 

그렇게되면 지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중에도 상위 속성이 전적으로 하위 속성으로 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둘로 나누어지고 야수성이 스스로 탈출하여 살아있는 동안에 야수성의 안내자가 되었어야했을 마나의 반영들을 대동하되 구속되지 않은채로 앞으로 나아간다. 형태로는 인간적이지만 내부속성은 짐승인 그러한 존재는 여전히 살아 있지만 부패한 사람들로서 연민이 느껴지더라도 전율해야할 사람의 무리들속에서 우리가 우연히 만날 수도 있다. 신체적 죽음후 그러한 아스트럴체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닌 실체가 되어서 일반적으로 엘리멘터리Elementary로 알려진다. 엘레멘터리에 대한 설명은 The Astral Body의 pp142, 143에 주어져 있다. 

자아의 관점에서 보면 그 개성으로 부터 유용한 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 “광선”은 아무것도 거져오지 못했고 하위의 삶은 전적으로 완전한 실패가 되었다. 

침묵의 목소리에 다음의 권고문이 있다. “마야의 바다에 몰입되어 있는 너의 하늘태생을 우주의 부모(영혼)로 부터 단절되지 않도록 하고 불꽃 같은 능력이 그대 마음의 가장 깊숙한 영역과 세계의 어머니의 거주지 속에 은둔하도록 하라.” “하늘태생”은 치타 즉 하위의 마음이다. 그것의 위의 영혼으로 부터 태어나는데 그때 마나스는 화신할 때 이중적이다. 아트마-붇디-마나스의 계들은 하늘로 상징되어 있고 반면에 개성personality의 계들은 지상으로써 언급된다. 인간에게 얼마의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인간속에 있는 “하늘태생”의 존재이다. 그리고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런 자유와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의 삶은 외부적 성격을 지닌 하위계들의 생활보다 더 무질서하고 덜 통제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조차도 그들의 멘탈 질료의 얼마가 자기의 아스트럴 질료와 밀접히 얽혀있어서 멘탈 질료가 사후에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카마와 마나스 사이의 투쟁의 결과는 멘탈 질료와 심지어 원인체(상위멘탈) 질료의 얼마가, 에고가 아스트럴체로부터 완전히 탈피한 후에도 아스트럴체에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 다른 한편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 그의 저급의 욕망들을 완전히 정복하여 그의 마음을 욕망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하는데 성공했다면 실제로 어떠한 투쟁도 존재하지 않고 에고는 자기가 특정한 화신에 쏟아부었던 노력뿐만 아니라 획득했었던 모든 이익 즉 경험들과 능력들 등등을 회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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