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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럴체 [아스트럴체] 12장 죽음과 욕망 엘리멘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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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나무 댓글 0건 조회 3,221회 작성일 16-08-10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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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장 죽음과 욕망 엘리멘탈 


죽으면 대개 몇 시간 동안 밀도 높은 육체로부터 에텔 복체로 의식이 철수한 뒤에 아스트랄체로 들어간다. 

그래서 죽음은 옷을 벗거나 칼집에서 칼을 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불멸의 부분인 에고는 외피를 하나하나 벗어버린다. 처음에는 밀도 높은 육체를 그 뒤에는 에텔 복체를, 그리고 아스트랄체로 이어진다. 

거의 모든 경우에 실제적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끔찍한 고통을 수반한 장기간의 질병을 앓은 경우에도 전혀 고통이 없다. 죽은 자의 얼굴에 나타나는 평화로운 모습은 이러한 진술을 강하게 뒷받침해 주는 증거이며, 죽음 직후의 순간에 대해 질문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직접 증언하는 것이다. 

실제로 죽음의 순간에 죽음이 갑자기 찾아와도 사람은 자신의 지나간 생 전체가 대단히 자세하게 정리되는 것을 보게 된다. 순간적으로 그는 자신의 생 동안에 작용했던 원인의 전체적인 연쇄를 본다. 그는 아첨이나 자기 기만에 의해 꾸며지지 않는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보고 이해한다. 그 자신이 멈춘 활동 무대 위를 방관자가 되어 살펴보면서 생을 읽게 된다. 

죽음의 순간 직후 의식의 조건은 대개 꿈같고 평화로운 것이다. 또한 몇 분이나 몇 시간 때때로 며칠이나 몇 주라도, 무의식 상태가 잠시 지속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스트랄 대응 부분과 육체 사이에 존재하는 자연적인 인력은 습관의 힘으로부터 아스트랄 대응물이 낯익은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 사후에도 사람의 물리적 모습은 거의 변하지 않고 유지된다. 아스트랄 질료가 상념에 의해서 쉽게 형성된다는 관점에서 사후의 자신을 실제적인 자신보다 더 젊게 상상하는 사람은 젊은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죽음 직후에 욕망 엘레멘탈의 작용 때문에 아스트랄체 구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아스트랄체의 질료는 대부분 엘레멘탈 에센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에센스는 지성적이지는 않다 해도 살아 있는 것이며, 당시의 아스트랄 에센스 덩어리 전체에서 분리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고 진화를 더 많이 하려고 맹목적이고 본능적으로, 무분별하게 자기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주를 많이 피운다. 

그것에게 진화란 물질로 하강하는 것이며 광물 모나드로 되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서 그것의 삶의 목적은 할 수 있는 한 물리계로 가까이 접근해서 가능한 한 조잡한 진동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동안 사람의 아스트랄체 안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알 수도 없다. 

그것은 분리된 삶을 유지하기를 바라며 사람과의 관련성에 의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의 하위 마음을 알고 있고, 자신과 관련 맺을 수 있는 멘탈 질료가 더 많아지면 그 아스트랄 삶이 더 길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육체가 죽으면 아스트랄체를 가능한 한 지속시키기 위해서 분리된 삶의 기간이 제한된다는 것과 사람의 아스트랄 죽음이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은 질료를 최외곽에 있는 구심적인 고리나 껍질 안에 재배열시킨다. 욕망 엘레멘탈의 관점에서 이것은 좋은 방책이다. 왜냐면 가장 조잡한 질료가 결합되면 가장 오래 그리고 가장 좋은 정지 마찰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배열된 아스트랄체는 야따나Yatana 또는 고체(苦體: suffering body)로 불린다. 아스트랄체에서 가장 조잡한 질료가 지배적인 매우 악한 사람의 경우에는 드루밤Dhruvam 또는 강체(强體: strong body)라고 불린다. 

아스트랄체의 재배열은 둘러싸고 있는 난형의 표면이 아니라 육체에 상응하는 표면 위에서 일어난다. 

그 효과는 대개 아스트랄체에서 아스트랄 질료의 자유롭고 충분한 회전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더욱이 그 사람은 아스트랄체의 최외곽에서 받아들이는 파동에만 반응할 수 있다. 그래서 말하자면 아스트랄 질료로 이뤄진 틀 속에서 최하위의 가장 조잡한 계의 사물들만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높은 영향력과 아름다운 상념태 속에서 살아도 그들이 실존해 있다는 것을 완전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면 그러한 파동에 반응할 수 있는 아스트랄체의 입자들과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사람의 아스트랄체에 있는 가장 조잡한 질료만을 감지할 수 있고, 그 제한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불만족스러운 특성들만을 지녔다고 생각할 것이다. 

최하위의 가장 조잡한 것만을 보고 느낄 수 있다면 주변 사람들은 사악한 괴물로 나타난다. 이러한 환경 아래에서 아스트랄 세계를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별로 이상하지 않다. 

욕망 엘레멘탈에 의한 아스트랄체의 재배열은 자연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희미해지고 영적인 모습이 전체적으로 커지게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난형 내부의 형태를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앞으로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 최외곽 껍질 또는 고리가 해체되면 사람은 차상위의 아스트랄계 수준의 진동에 반응할 수 있고, 그래서 "다음 하위계로 올라간다". 그렇게 한 하위계에서 다음 하위계로 올라가게 된다. 물론 각각의 하위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스트랄체에 그 하위계에 속하는 질료의 량과 활동성에 따른 것이다. 

한 하위계에서 다른 하위계로 오르는 것은 꼭 공간상으로 이동할 필요는 없다. 한 수준에서 다른 수준으로 의식이 옮겨지는 것이다. 아스트랄체가 재배열된 사람의 경우 의식의 초점이 그 안에서 외곽의 껍질로부터 다음의 껍질로 이동한다. 그래서 사람은 한 서열의 질료의 파동에 반응하지 않게 되면서 상위 서열의 질료에 점차 응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장면과 거주자들이 있는 세계가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면서 다른 세계가 내려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껍질이 점차 해체되면 물리적인 대상의 대응 부분이 점점 더 희미하게 되는 반면 상념태가 점점 더 생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벌어지는 동안에 이따금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 자신이 상위 파동의 성격을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성격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아스트랄체의 재배열은 아스트랄 삶의 모든 단계에서 자기 친구를 진정으로 완전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방해한다. 

대부분 사람에게 일어나는 아스트랄체의 재배열 과정은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에 의해 예방될 수 있다. 사실, 아스트랄계의 조건들을 이해하는 사람은 욕망 엘레멘탈에 의한 아스트랄체의 재배열을 이뤄내기가 쉽다. 그래서 아스트랄체의 입자들은 일시적으로 한 아스트랄 하위계에 제한되는 대신에 아스트랄체의 조건에 따라 살아 있을 때처럼 계속 혼합될 것이다. 

별난 반의식적 두려움을 느끼는 엘레멘탈은 재배열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을 막기 위해서 충격을 줘서 두려움을 전가하려고 한다. 그 때문에 죽기 전에 이러한 질료에 대한 지식을 아는 것이 유용하다. 

재배열 또는 껍질 벗기가 이미 일어나도 도와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조건을 해체하게 되면 그 사람은 한 수준에 제한되는 대신에 자유롭게 전체 아스트랄계에 작용하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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